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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라히

카게히라 미카 X 이츠키 슈

 

 

 

" 카게히라, 넌 예술품을 어떻게 생각하지? "

 

" 예술품? 음... 아무리 미완성인 형태이더라도 아름답고 완벽한 것이 아닐까 싶데이. 근디 와 묻는긴데? 응 스승님? 응아아, 어디가노 스승님! 내도 데려가도! 같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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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감정의

- 카게히라 미카

 

 

붉게 물들어 있던 단풍은 색이 다하고 끝내 떨어진다. 굳게 닫혀있던 창문은 덜컹거리기 시작하고, 조금씩 새어 들어오는 바람의 온도가 제법 차가워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벌써 겨울이데이. 시간이 많이 흘렀구마. 이번 겨울만큼은 조용히 지나갔으면 좋겠는디. 언제 두었는지 모르는 찻잔 속 꽃잎들. 이미 한참 전에 말라비틀어져 조금만 힘을 주면 곧장 으스러지고 만다.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처럼 그것들은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이상하게도 속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무치는 감정들은 서로 뒤엉켜 형태를 알아볼 수 없었다.

 

후회, 경멸, 염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대답할 수 없는 감정들. 모습을 감추기 바쁜 감정들은 나에게 정답을 알려줄 생각조차 하지 않는 듯했다.

 

...... 연민, 사랑?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기고. 그래선 안된다는 거 이미 잘 알지 않나. 내가 감히 내 까짓게?

 

도움도 못 되는 인형 주제에. 나도 모르게 주먹을 세게 쥐었다. 컴컴한 방에 얇게 비쳐 든 저녁놀. 그것은 구름에 가려져 차츰 빛을 잃어갔다. 굳게 닫혀있는 창문을 여니 거센 바람에 의해 끝까지 젖혀져 비명을 지른다. 금세 방 안은 차가운 공기에 지배당했고, 나는 그에 대한 온기마저 휩쓸릴까 두려운 마음에 얼른 문을 닫아버렸다. 시끄럽게 울려 퍼지던 바람의 소리가 사라졌다. 바람이 어지럽게 흩트려 놓고 간 그 외로운 방엔 어둠이 득실거리기 시작했다. 입에서 맴돌던 달콤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어느새 씁쓸한 맛으로 되돌아온다.

 

 

-

 

 

그는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의 깊은 수심에 빠졌다. 사람들은 그의 예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고, 발키리를 바라보는 시선은 온통 악의로 붉게 물들었다. 애초에 유메노사키의 시스템은 발키리의 예술의 방향성과 매우 달랐다. 무대를 이끌어 가는 건 오로지 이츠키 슈, 나의 스승님이었다. 그의 예술에선 조금의 타협도, 아첨도 존재하지 않기에. 발키리가 절대 따라갈 수 없는 시스템이었다. 그것은 누군가 마치 일부로 우릴 바닥으로 끌어내리기 위해 작정한 것처럼 보였다. 발키리는 '처형'이라는 단어로 조롱당하고, 가면을 쓴 것들에게 역겨운 동정을 받는다. 발키리의 위기를 자신의 유머 거리로 삼는 인간들. 별이 빛을 다한 거라며 뒤에서 웃어대는 모습은 사람의 속내를 불쾌하게 해 헛구역질이 나올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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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 내가 못 때릴 거 같나? "

 

발키리에게 모욕을 준 것.

스승님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

결국 스승님을 아프게 한 것.

모두 역겨웠다. 저주스러웠다.

 

...왜 하필 스승님이었던 긴데? 꼭 스승님이었어야만 했나. 스승님이 니네보다 뛰어나니까 질투했던거제? 그래도 이건 아니지. 사람이라면 이런 짓은 좀 아니지 않나.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니는 스승님과 친구 아니었나? 설마 배신한기가. 고작 자신의 이익 때문에?

 

" 그만해, 카게히라. ...그만해줘. "

 

화가 났다.

 

" 왜... 왜 그런 말을 하는긴데. 스승님은 정말... "

 

잡고 있던 멱살을 풀었다. 금방이라도 흐를 것만 같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동자, 희미하게 고막에 남아있는 울림은 나를 더욱 아프게 만들었다. 들끓어 오르는 감정들,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의 처지는 저들에게 그저 웃음거리겠지. 그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의 무능함에 화가 났다. 내가 나약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저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권력과 힘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스승님은 이런 희롱 따윈 당하지 않아도 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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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차마 스승님을 볼 수 없었다. 이 짓눌릴 것 같은 슬픔을 그에게 떠넘긴 것 같아서. 이미 충분히 아픈 사람에게 또다시 아픔을 쥐여준 것 같아서. 그의 방에서 새어 나오는 얕은 울음소리는 바람에 의해 묻히는 듯했지만 여전히 나의 귓가에 맴돌았다.

 

미안해. 미안하데이, 스승님. 내가 잘못했다. 울지 말아도...

 

 

-

 

 

그는 모든 외부와의 접촉을 끊었다. 유일하게 그의 곁에 남아있는 건 스승님의 인형인 나였지만 나는 그에게 위로가 되진 못했다. 방 안에 틀어박혀 발키리가 수없이 나타냈던 예술에 완벽을 덧대어 그리는 예술가. 이미 완성된 그림에 짙은 물감을 입히고, 끊임없이 덧칠하기를 반복했다. 끝내 망가진 그림은 쌓이고 딱딱하게 굳어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가 구현하고 싶은 예술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그는 왜 스스로 자신의 목에 목줄을 채우는 것인가.

 

" 카게히라, 나는 정말 틀린 것일까... 나아갈 곳이 없어. 사방이 가로막힌 길이야.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아. 이렇게 사람들 사이에서 잊혀지면 어떡하지? 세상이 날 좋아하지 않을 거다. 결국 신에게 버림받을 거야. 두려워. 끝없는 어둠이 나를 자꾸 부르고 있다. 저것들은 나를 계속 괴롭혀. 도망치고 싶어. 카게히라... 난 이제 어떡하지? "

 

어쩌할 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눈빛은 나를 바보로 만들었다. 평소에는 닿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그의 뺨을 나도 모르게 어루만졌다. 내 가슴속에서 이상한 기분이 차올랐다. 나는 그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인지하기도 전에 얼른 손을 떼어냈다.

 

" 스승님 "

 

" ...차라리 인간으로 살 바엔 예술품이 낫겠구나. "

 

그가 손톱을 씹으며 중얼거렸다. 어깨를 떨며 안심 담요를 뒤집어쓰고 있는 그의 모습은 처음으로 그가 작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나는 이미 그가 망가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영혼은 어느샌가 뒤틀려 버렸으며, 날이 갈수록 어둠에 잠식되어갔다. 나에겐 스승님 뿐이었는데. 그는 항상 나와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도 왜 그를 떠나지 않았냐고? 나는 그를 절대 놓을 수 없었다. 카게히라 미카라는 존재가 그의 예술에 조금이나마 도움 되길 원했으니까. 내가 망가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츠키 슈라는 사람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랬으니까. 나 따윈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그를 빼고서 역사가 움직인다면, 나는 그런 건 못 참는다. 이 사람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그의 옆을 지킬 것이다.

 

스승님, 이야기의 끝은 우리의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구마.

 

비록 내는 스승님의 기준에서 벗어난 불출한 인형이지만 소원 하나쯤은 이뤄지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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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롭고

- 카게히라 미카

 

 

그의 방엔 온통 그가 좋아하는 색의 고급스러운 원단들과 새벽까지 무언가를 구상한 듯한 그림, 그리고 별로 달갑지 않는 내용의 신문들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그것들은 마치 누군가 일부로 물을 쏟은 것처럼 하나같이 모두 흠뻑 젖어있었다. 응아아, 습하데이. 건조한 바람이 부는 겨울인데도 눅눅한 공기가 그의 방을 가득 메웠다. 어쩔 수 없이 창문을 열었다. 괜찮겠제, 아직 해도 떠 있으니까.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오후지만 깊은 잠에 빠져버린 스승님의 모습은 마치 앙상한 나뭇가지 같았다. 깃털같이 부드럽던 피부도 수분을 잃어 거칠어졌고, 항상 짧게 유지했던 머리는 어느새 눈썹까지 길어 곧 눈을 찌를 듯했다. 씁쓸했지만 한 편으론 안도했다. 다행이데이. 스승님의 시간은 계속 흐르는구마. 인형은 무너진 제 주인을 바라본다. 그에게 조금의 도움이 될 수 있더라면 좋을 텐데. 그의 아픔의 무게를 내가 덜어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설령 나의 목숨을 저버리는 일일지라도 나는 그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데.

차라니 내가 이렇게 괴로웠더라면,

그의 아픔이 나의 것이라면,

조금 멍청한 생각을 했다.

 

" 스승님, 내는 스승님이 행복했으면 좋겠데이. 스승님의 예술은 틀리지 않았다. 스승님의 두 번째 인형인 내가 증명할게. "

 

발키리의 예술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발키리는 아직 정점이라는 것을.

내가 있을 곳은 오로지 스승님의 옆, 발키리다.

 

" 스승님은 걱정 말고 푹 쉬어라. "

 

발키리의 리더 이츠키 슈, 나를 한때 구원해 준 스승님.

나의 태양, 나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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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간 이 기나긴 겨울도 머지않아 한순간의 환상이 되고, 어느덧 봄이 찾아와 꽃을 만개하겠지. 언젠간 톱니바퀴는 운명을 맞아가고 멈춰있던 시계의 침은 움직일 것이다. 나는 굳게 믿고 있다. 세상은 그런 것이니까.

 

이야기의 끝에 스승님이 해피엔딩을 맞이한다면, 그게 곧 나의 행복일끼다.

내는 진심으로 스승님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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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승님 이게 뭔디? 포.. 포르.. 티.. '

 

' 포르티시모, 이탈리아어로 음악에서 쓰이는데 단어란 게야. 매우 세게라는 뜻이지. '

 

' 응아, 처음 알았데이. 스승님은 역시 천재구마. '

 

' 흥, 그렇고 말고. ...나의 예술은 포르티시모다. 이 세상을 매료시키지. 속물들에게 예술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는 거다. '

 

' 그럼 그 반대말은 뭔디? '

 

' 반대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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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었다. 옛날의 기억이 그리웠는 건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를 감싸고 있던 따뜻한 일체감은 사라지고 없다. 너무나 느닷없어서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눈물이 나왔다. 볼을 만진 손가락 끝에 묻은 물방울. 조금 전까지 꾸던 꿈은 순식간에 사라진 뒤였다. 그 뒷말은 뭐였는고... 기억이 안 나는구마. 나는 억지로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을 포기했다. 단념한 후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햇빛이 어렴풋이 들어오는 창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잠깐의 봄이라도 온 듯이 겨울치곤 제법 날씨가 따뜻했다. 뺨을 스치는 햇빛, 마음을 간질이는 미풍의 온도. 전날 밤 휘몰아치던 바람은 금방 잠잠해졌다. 겨울이라 함부로 손대지 못했던 창문을 오늘만은 열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최대한 숨을 죽이고 그의 방으로 향했다. 언제나 그랬듯 그의 방에 올라가는 일은 조심스러웠다. 그는 조그마한 소리에도 반응하여 가끔 발작을 일으키곤 하니까. 문을 여니 그의 향이 코 끝을 간지럽혔다. 달콤하면서도 보송하고 섬세한 향. 어딘가 차가워진 것 같기도 했지만 기분 탓이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 카게히라, 잘 잤나? 오랜만이군. 이렇게 너보다 일찍 일어나는 것은. "

 

이른 아침에 일어나있는 그였다. 멍청한 내가 시간을 착각한 줄 알았으나 시계를 보니 정확히 아침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 스승님, 몸 괜찮나..? "

 

" 내가 어린아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카게히라 주제에 걱정도 하는구나. 뭐, 오늘은 허락하지. 엄청난 영감이 떠올라 기분이 좋으니 말이다. "

 

그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바깥에 내리쬐는 햇살보다 더 따스한 웃음을, 나즈나 형을 보며 짓던 웃음을 나에게도 지었다. 그러나 그 모습은 이상하게도 부자연스러웠다. 마치 한 송이의 장미 같다랄까. 아름답지만 어딘가 외롭고 쓸쓸하며 자신을 보호하기 의해 가시를 돋우는 꽃. 예전에 비해 야윈 그를 보니 마음이 아파왔다.

 

" 스승님, 그럼 오랜만에 산책이라도 갈까? 날씨도 따뜻해서 감기 안 걸릴기다. "

 

" ... 농, 한가롭게 놀 시간이 없다는 게다. 이만 나가거라. 속물들에게 보여줄 완벽한 예술을 구현해야 하니. "

 

그가 뜸 들이며 시선을 회피했다. 예술에 경도된 그의 모습은 어딘가 이질감이 들었다. 그는 당장 눈앞에 있지만 잡을 수 없이 흐릿했다. 얼른 고개를 돌려버린 바람에 그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보지 못했으나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무엇을 숨기는 듯한 그의 작은 등. 나에게 절대 기대지 않는다. 아픔을 나에게 조금이라도 나누어주면 좋으련만.

 

" 응, 스승님. 언제든지 기다릴게. 도움 필요하면 불러도. "

 

차마 마지막 말은 전하지 못했다.

 

스승님, 내는 언제나 스승님 편이데이. 무슨 일이 있어도 스승님 곁에 있을끼다. 절대 떠나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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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글픈

- 카게히라 미카

 

 

그가 방에 틀어박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지 어느덧 닷새째. 최고의 예술을 보여주겠다며 한동안 찾지 말라는 그의 당부에 함부로 다가갈 수 없었다. 그의 심기를 거슬리게 했다간 어떻게 될지 어림조차 할 수 없기에 나는 가만히 그를 기다렸으나 며칠 전 걱정되어 잠깐 열어 본 문틈 사이로 어떠한 물체가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새된 비명과 어떠한 물체가 내동댕이치며 깨지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려 퍼졌다. 결국 그 이후로 그에게 더 이상 다가갈 수 없었다. 내가 더 그를 힘들게 하는 것 아닌가. 과연 내가 스승님에게 도움 되는 게 맞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그의 문 앞에 가져다 놓은 음식도 항상 차갑게 식어있다. 스승님이 잠깐 보여주었던 웃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거였구마. 또 나혼자 착각한 것인갑네.

숨죽여 그의 방문을 두드렸다.

 

똑똑-

 

" 스승님 안에 있나. 물이라도 놔둘 테니까 마셔라. "

 

평소 그였더라면 물건 던지는 소리가 나거나, 비명이 들릴 터, 그의 옷깃 스치는 소리 하나 없이 고요한 탓에 오한이 들었다.

 

" 스승님 괜찮나, 왜 대답이 없노. "

 

" ...... 스승님? "

 

____ 결국,

 

쿵쿵-

 

" 스승님 대답해도! 괜찮나, 대답 안 하면 내 들어간 데이! 그래도 괜찮나! 스승님! "

 

____ 이렇게 돼버린기가,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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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한 마음에 조급해졌다.

역시 내가 그의 옆을 비우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가 아무리 화를 내고, 그가 아무리 악을 써도 그의 옆에 계속 있었어야 했다.

 

____ 실패작.

 

실패작은, 인형은, 나는 스승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 하는기가.

내가 인형이라서 스승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기가.

 

옛날에 어떠한 빛을 본 적 있다. 그 이후로 빛을 다시 만나기를 고대해왔고, 어느 날 우연히 본 전광판에는 빛이 신이 된 자가 있었다. 온전히 동경심 뿐이었을까. 어쩌면 그 옛날부터 품어선 안 될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닐까. 사랑이라는 단어로 치부하기엔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있었다. 나는 깨달았다. 결국 내가 지금까지 회피해왔던 거는 나의 감정이었던 것이다. 알아차리고 보니 이미 한참을 늦은 후, 그에게 절대 전할 수 없는, 누구에게도 전하지 못할 이야기가 되었다. 누군가 억지로 맡긴 짐처럼 나는 그 감정들을 떠안는다. 앞으로 내게 남는 것도 이 감정 뿐이겠지.

 

 

-

 

 

숨이 막히듯

- 이츠키 슈

 

 

거세게 휘몰아치는 눈보라는 마치 나의 마음을 대변한 듯했다. 칠흑 같은 어둠을 찢듯 부는 바람은 모든 것을 휩쓸어버릴 거 같이 위협적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새하얀 눈은 이제 바닥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쌓였다. 순수한 듯 보이지만 생명의 온기를 한치의 자비도 없이 앗아갔다. 저 너머에 보이는 숲은 과거의 아름다운 시간과 푸르렀던 색, 그리고 풍성했던 형태를 잃었다. 한껏 웅크린 겨울. 결국 나는 아무것도 지키지 못했다. 나의 발키리도, 나의 예술도, 우리가 쌓아왔던 그 모든 것을. 제자리걸음만 반복하는 예술가를 과연 예술가라 할 수 있을까. 끊어진 실들은 나를 둘러 조른다. 희로애락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인간의 마음이 이토록 괴로운 일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저 내가 살아있음을 세상에 표현하고 싶었다. 나의 삶, 나의 생명, 살아있는 것에서 나타날 수 있는 모든 아름다움을 예술을 표현하고 싶었을 뿐. 그랬던 예술이 언제부턴가 변질되어갔다. 완벽이란 것에 목을 매고 갈망하며 나를 옥죄이고 벼랑 끝으로 몰아세운다. 정녕 내가 원했던 건가? 나는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걸어온 거지? 변질되어버린 예술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미 한참을 벗어난 길.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잘못된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땐 늦어버린 후였다. 세상에 미를 묻는 예술을 원했었는데. 나의 욕심 때문에 모든 이들에게 고통을 주었다. 끝내 어리석은 예술가. 아니, 이젠 예술가라 칭할 수 없지. 나에게 더 이상 예술가의 자격은 남아있지 않다. 망가진 나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면 화를 참을 수 없었다.

 

쨍그랑-

 

" 이건 예술이 아니야. 예술은 이딴 게 아니야. 모든 게 망가졌어. 되돌릴 수 없단 것이다. "

 

" 제발... 스승님. 스승님은 뭘 하고 싶은 긴데. "

 

어느 날 카게히라가 흥분한 날 막아서며 물었다. 나는 무얼 하고 싶냐고? ...카게히라, 나는 길 잃은 아이가 돼버렸어. 나는 인간이 너무 싫다. 내가 인간이라서, 희로애락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인간이라서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프다. 인간이 하는 선택은 모두 멍청한 것일까. 나는 오만했다. 결국 진실 앞에 선 나는 그저 한없이 작은 인간이었던 것뿐인데. 어디서부터 뒤틀려버렸을까. 나는 이 세상을 구원해 줄 구세주라 믿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속물들과 다름없는 한낱 인간이었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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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____ 차라리 이 모든 게 꿈이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불쾌하다. 이미 바닥으로 처박힌 기분은 더 이상 나아지지 않았다. 원래 자기합리화란 이런 것이었지. 세상에 대한 회의감이 몰려온다. 본디 배어남은 허무는 나를 깔아뭉개 쌓여 썩어간다.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바람에 덜컹거리던 창문을 열었다. 카게히라가 절대 창문은 열지 말라고 당부했었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구나.

 

" ...카게히라, 나는 세상에 뛰어난 천재인 줄 알았다. 굳은 믿음이 무너지는 순간 나는 나의 인생이 아닌 세상에 회의감이 들더구나. 나는 구세주로서 속물들을 예술에 눈뜨고 모든 것을 빛으로 채워주려고 했는데, 지지 않는 태양으로 다시 세상을 비추고, 모든 것을 구제해 주려고 했는데. 신은, 운명은 우리를 버린 거야. 정말이지... 우스꽝스럽네. "

 

 

신께 묻고 싶다. 세상의 아름다움은, 완벽은 무엇이냐고. 처음부터 이럴 심산이었을까. 신은 인간을 불완전한 존재로 탄생시키고 한계에 부딪혀 끝내 좌절하는 모습이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인간은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결국 좌절하고 나서야 깨닫게 만드는 신. 한 때 신을 동경했었던 나는 신을 증오하게 되었다. 신은 과연 인간을 사랑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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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웠었다

- 이츠키 슈

 

 

어째서 그 아이는 나를 그렇게까지 따르는 걸까. 나는, 그 아이에게 상냥하게 대해 준 적이 없을 텐데도. 이제껏, 잔뜩 고생시켜왔고 말인데. 발키리에게 얽매여서, 나와 함께 끝 없는 늪에 가라앉지 않아도 되는데.

 

카게히라는 줄곧 나를 믿고 따랐다. 더 이상 떨어질 곳 없는 위치에 서 있는 나의 옆을 지켰다. 그 아이를 위해서라도 계속 이어가야 하는데, 나아가지 못하는 나를 저주했다. 그 아이는 아직 나를, 최강이고 완벽한 톱 아이돌이라며 자꾸 웃음을 짓는다. 뭐가 좋다고 저렇게 웃는 건지. 만족스럽게 춤 스텝도 밟지 못하게 된 나를, 아직 유메노사키 학원의 제왕이라고 믿고 있다. 괴로웠다. 내가 저 아이의 미래를 막고 있는 거 같아서, 나는 나를 원망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끔찍하게 싫었다. 자칫 내 어둠이 저 아이를 삼켜버릴까 봐 내 자신이 무섭다.

 

" 카게히라, 나의 곁에서 떠나. 당장. 제발 날 더 비참하게 만들지 마. 너는 내 곁에서 행복해질 수 없단 것이다. 부탁이야, 날 떠나. "

 

이미 다 무너진 사람 앞에 무너질 듯한 표정을 한 사람.

왜 그런 표정을 짓는 거지?

정말 목숨을 바칠 정도로 날 아끼기라도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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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이대로 사라져 버렸으면, 이대로 아무도 모르게. 신은 불공평하고, 잔혹하다. 발버둥 치는 인간을 무참히 짓밟을 만큼 무자비하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다져왔던 것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발키리, 나의 청춘이여, 더는 이 손에서 떨어지지 말아 줘. 끝내 어둠이 찾아왔다. 커튼 너머로 비치는 달빛은 구름에 가려 얕아졌다. 밤이 눈을 뜨고 나에게 속삭인다. 어둠은 결코 두려운 게 아니라고. 그래, 무고한 불행이었다면 어둠은 두려운 게 아니었겠지.

 

카게히라 그거 기억나나? 나의 예술은 포르티시모라고 했던 것. 사실은 내가 틀렸다. 그 반대말이었던 것 같구나. 강한 척 했던 거였어. 실제로 강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결국 절벽으로 떨어지고 나서야 깨달은 나도 참 우습구나.

 

그 아이는 나를 단순히 쉬어가는 나무로 여기고, 자유롭게 날갯짓했으면 하는데. 뭘 이제 와서 그러느냐 싶기도 하고, 바보에겐 무슨 소리를 해도 소용없겠지. 그래서 나는 선택했다.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선택을. 투명한 유리병에 담긴 약은 얕은 빛을 받아 선명한 색채를 띄었다. 조심히 뚜껑을 열었다. 그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해피엔딩이길 빌어보았다.

 

" 카게히라, 이제 자유롭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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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는 소리는 오로지 무언가 맞춰지는 소리로 가득 찼다. 딱딱하게 굳고 마르고 더 이상의 감촉은 느껴지지 않았다. 가야 할 시간을 억지로 붙잡는 것을 선택한 예술가. 메말라가는 감정을 그저 받아들이고 있을 뿐. 환상에 빠져, 마지막 음과 함께 희망과 기대 속에서 이츠키 슈라는 인물은 잠들었다. 자신을 견디지 못한 어느 불쌍한 천재의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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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

- 카게히라 미카

 

 

무색하게도 바람에 흩날리는 커튼은 나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듯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한 장의 종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둠 속에 있는 무언가. 그것을 맞이하기엔, 진실을 마주하기엔 아직 나는 두려웠다.

 

[ 네가 이 편지를 발견했다면 나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란 소리겠지. 나는 나 자신을 삼켜버렸다. 돌아오지 못하도록 망가뜨렸지. 나는 인간을 포기하기로 했다. 예전에 네가 그랬지. 작품은 미완성인 형태이더라도 아름답고 완벽한 것이라고. 네 말이 맞다. 완벽할 수 없는 인간으로 살 바엔 완벽한 작품이 더 낫겠구나라고 생각해. 카게히라, 너는 더 나아가도록 해. 나에게서 벗어나 너의 예술을 세상에 표현하도록 해. 착실하게, 예전에 우리가 했던 것처럼. 그러니까 끊임없이 노력해라. 자신을 갈고닦고, 지혜를 쥐어짜내서 행동하고, 가냘픈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도록 해라. 우리가 함께한다면 나는 언젠가 너의 길을 막게 될 거야.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인 거다. 고마웠어, 카게히라. 너만큼은 나처럼 망가지지 말아라. ]

 

작은 편지에 반듯한 글씨. 그 글씨 위에 겹친 눈물 자국.

 

' 카게히라, 난 두려워. 사람들에게 버려져 영영 잊히는 발키리가 될까 봐. 미래를 향해 나아가지 않는 발키리는 더 이상 살아있는 것이 아니게 될 테니까. 끊임없이 창조해야 해. 완벽해야 해. 인형처럼, 아름다운 인형처럼 완벽해야 해.. '

 

' 내가 할 수 있는 건 예술뿐이다. 넌 이해할 수 없겠지. 넌 그저 조종 당하기만 하면 그만이니. 이 실패작. '

 

' 모든 것이 내 손아귀에서 떨어져 버렸어. 카게히라, 넌 날 떠나지 않을 거지? 그렇지? 그렇다고 말해줘... '

 

' 날 선뜻 건드리지 마! 부서져 버릴 거야. 더 이상 세상에 남아있지 않게 될 거야. '

 

그의 목소리가 나의 귓가에 맴돈다. 빠져나가지 않고 나의 머릿속에서 머물며 나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왜?

 

남은 건 의문 뿐이었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선택, 전혀 그 답지 못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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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 다가갔다. 눈을 감으니 밤이 찾아오고 어둠은 나를 끌어당긴다. 그의 아픔의 무게가 이토록 무거웠구나. 눈앞에 있는 것은 나의 환상이길 바랬다.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 그런데도 내가 나아가길 포기한 이유는 단지 두려운 마음 때문일까, 아니면 진실을 마주하기 싫어 회피하는 걸까. 이것도 아니라면 그의 선택을 부정하고 싶기 때문이겠지. 몸이 얼어붙을 것만 같은 공포를 이겨내려 애를 썼다.

 

" 스승님, 내 무섭다. "

 

 

울음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눈물이 흘러서 시야가 흐려진다. 아름답지만 공허한 형태는 바람에 날려 사라질 듯하다. 마치 마른 꽃잎처럼 말이다.

뻗은 손은 그의 앞에서 멈춰섰다. 결국 방향을 잃고 떨어진다.

 

미안해,

미안해,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타.

 

스승님 왜 그런긴데.

이건 스승님 답지 않은 선택이잖아.

스승님은 정말 이런 걸 원했던 기가.

내가 스승님을 정말 떠나길 바랬나.

이렇게 하면 내가 떠날 줄 알았나.

정말로?

...스승님은 행복하나.

 

나는 울면서 그에게 말했다. 이래선, 이래선 행복할 수 없지 않나. 겨우 알았다.

나는 나의 스승님을 사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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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하게 굳었으나 반질한 피부, 곱고 빛나는 색들, 너무나도 투명해 속이 다 보일 듯한 유리구슬 같은 눈동자. 그러나 눈동자를 채운 건 공허함 뿐이다. 이 모든 것은 나더러 그를 잊으라 말하는 것만 같다. 차라리 이 모든 게 나의 상상이고 환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혼란스럽다. 눈앞에 나타난 형태가 그게 상상이, 환상이 아니었음을 또렷이 내게 알려주고 있다. 괴로워.

 

그는 죽은 예술가 되었다. 비록 빛을 빼앗기고 영원히 멈추어버렸으나 끔찍하고도 소름 돋게 완벽한 모습이 떠받들어지길 반복하겠지. 아마 그 명성이 마르고 닳아 없어질 때까지, 영원히. 그러나 그는 모를 것이다. 자신의 숨이 사그라든 지 오래라는 것을. 그의 소원대로 예술품이 되었으나 이것을 하나의 작품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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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츠키 씨의 선택을 한편으론 안타깝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선택이라고 봅니다. 보십시오. 모두들 찬양하고 경배하고 있지 않습니까? 곧이어 홀로 선 카게히라 씨도 발키리의 예술을 이어 나가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대단한 것 같습니다••• "

 

 

한 줌 재로 주저앉아 버린 아픔. 그가 살아있지 않은 세상에서 그를 모방한 예술을 선사하게 된 가증스러운 예술가가 된 것만 같다.

스승님 이게 정말 맞는 일인기가. 이래서 스승님이 그랬던 거구마. 스승님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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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시모

- 카게히라 미카

 

 

희미한 아침 안개 속에서 햇살을 반사하는 모습은 한없이 조용하고 평화롭다. 조용한 바람을 타고 오는 꽃향기는 코를 간지럽혔다. 그는 흐드러진 꽃잎이었을까. 그는 어찌 이렇게 온전한 나를 두고 떠나간 것인지, 그가 나 대신 날아가 버리고 그를 원망하며 보낸 시간이 꼬박 2년이다. 그의 시간은 겨울인데, 나는 그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었다. 만약 내가 인형에서 일찍 벗어났었더라면 그를 구원할 수 있었을까.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길고 긴 기다림 속에, 이제서야 이 거대한 우울과 후회에 잠식된 채 지새운 시간이 그가 남긴 나를 향한 그의 애증 섞인 마지막 발악임을 깨닫는다. 밖은 꽃이 흩날리며 아름다웠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봄이 이토록 싫었던가. 내가 그를 아직 보내지 못한 것 때문일까. 그럼에도 봄이 오다니, 그가 없는 계절은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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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대말? 딱히 인형 따위가 알 필요는 없을 거 같다만. 뭐, 정 원한다면 알려주지. '

 

' 피아니시모- '

 

피아니시모. 그래, 그랬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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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을 들어 영원히 전해지지 못 할 편지를 쓴다. 삐뚠 글씨라고 잔소리 했던 그가 생각나서 잠깐 쓰는 것을 멈추고 그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분명 글씨가 지렁이 같다며 다시 쓰라고 그랬겠지. 스승님 잔소리가 그립구마... 응아아, 또 눈물이... 소매로 얼른 그것들을 닦아냈다. 빨리 써야제. 뜸 들이다간... 또 놓치고 그를 애써 잡고 있을 거 같다. 이제 그만 놓아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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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 예술가는 피아니시모 같데이. 모든 것에 매우 여리며 섬세한 예술가들. 스승님도 마찬가지였다. 예술가들은 흔히들 강한 척, 매정한 척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제. 결국 스승님도 똑같은 인간이었구마. 회피해오고, 불안함에 이기지 못하며, 희로애락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 그게 인간인디. 스승님은 못 참았던 거재? 언제나 완벽하고 싶었으니까. 나는 스승님이 밉다. 나를 두고 떠나간 스승님을 한때 원망했다. 그렇지만 스승님은 나를 위해 그랬던 거겠지. 스승님은 참 서툴다.

 

...이제 내는 더 나아갈게. 비록 예술품이 되어버린 스승님은 영원하겠지만. 내는 이 세상을 벅차게 살아가다가 예술가로서의 삶을 다할게. ...그게 내 꿈인기라. 예술가의 할 일을 끝내고 완전한 종언은 맞이하는 것. 인형에서 벗어나 감정을 가진 사람 말이데이. 스승님 말대로 꽃을 피워내도록 할게. 더 나아가도록 할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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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승님, 너무 늦었지만, 스승님한테 전해질진 모르겠지만, 스승님을 아끼고 동경해왔데이. 고맙다, 정말로. "

 

이렇게 억지로 끊었다. 그를 잊어보려 발버둥 친다. 그의 온기가, 그의 형태가, 그의 목소리가 아스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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