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
어느 마을, 안개가 자욱히 낀 숲 속에서, 저택은 불타오르고 한 소년이 저택 안으로 뛰어들어간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면서, 저택 안을 둘러보았지만 대답을 돌아오지 않는다. 저택을 가득 채우는 것은 무너져내리는 소음과 그들의 웃음 소리, 그리고 누군가를 찾는 자신의 목소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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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자 그는 하던 뜨개질을 잠시 멈추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눈이 휘몰아치며 창을 두드렸다. 그가 시선을 조금 내리니 어떠한 형체가 보였다. 새하얀 눈이 쌓여가는 무언가. 이츠키는 뜨개질을 내려놓고 책상에 놓인 촛불을 들어 방 밖을 나섰다.
"또 어떤 놈이 헛짓거리를."
그는 작게 혀를 차며 복도를 지났다. 다듬지 못하여 위태로운 조각상, 먼지가 쌓인 커튼으로 감춰진 누군가의 초상화, 망가진 괘종시계을 지나자 나타난 계단을 내려갔다. 위로 크게 트인 창은 위태롭게 바람을 받아내며 소음을 냈다. 이츠키는 창 너머로 확인을 해보려 하였으나 소용돌이 치는 눈이 모든 것을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녹이 슨 문고리를 잡아 당기자 찬 바람이 방 안을 감쌌다. 동시에 누군가 문 앞에 기대어 있던 것인지 풀썩-하는 소리와 함께 형체가 보였다. 녹빛을 띈 머리칼이 눈 사이에 묻혀 살랑거렸다. 이츠키는 그 모습을 보고는 한숨을 내셨다.
"뭐하다 여기까지 온 게야."
이츠키는 눈덩어리를 집 안으로 들여와 쇼파에 눕혔다. 장작을 가져와 난로에 불을 피우고, 방에서 이불과 옷을 가져왔다. 옷은 식탁 위에, 이불은 그에게 덮어주었다. 그리고는 부엌으로 들어가 우유를 데우고 가져왔지만 여전히 그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츠키는 잠시 행동을 멈추었다가 식탁 위에 우유를 내려놓고 책을 가져와 그의 옆에 앉아 읽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따뜻하고 푹신한, 낯선 감각에 그가 몸을 뒤척대다가 눈을 떴다. 응앗? 그가 몸을 일으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런 그의 소란스러운 행동에 잠시 잠에 들었던 이츠키가 눈을 떴다. 시끄럽단 게야. 이츠키가 잔뜩 인상을 꾸기자 그가 다급히 말했다.
"그... 맘대로 문 앞에 고꾸라져 미안하데이. 그러려 한 건 아니었는디 나도 모르게 쓰러져 버렸구만..."
이츠키는 그의 횡설수설한 말들을 조용히 듣고는 책을 덮고서 일어섰다. 앞에 놓인 식탁 위 우유와 옷가지를 가르키며 말했다.
"앞에 옷이랑 식량을 두었으니 빠른 시일 내로 나가거라."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금세 눈을 접어 웃었다.
"잠자게 해줘서 고맙데이. 이 은혜는 나중에 꼭 갚겠구먼. 근데 이런 건 내가 받아도 되는기가? 내는 이런 건 없어도 된데이. 괜찮으니 도련님 많이 드시라. 눈이 많이 내려 춥던디 내 말고 도련님 입으라. 그리고 이런 옷은 내랑 안 어울린다. 이런 건 내 말고 도련님이랑 더 잘 어울리지 않나?"
그는 볼을 붉히며 뺨을 긁적였다. 그리고 이츠키는 소매 너머로 보이는 그의 손목을 쳐다보았다. 얇은 팔목 위로 퍼런 멍들이 보였다. 그의 몸에 달린 멍들이 그가 말하지 않아도 그에게 어떤 일들이 있는지 설명해주었다. 이츠키는 잠시 생각에 빠져 멍하니 서 있자 그는 또다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도련님, 괜찮나? 어디 아픈기가?"
그의 목소리가 들리자 이츠키는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젓는다. 쓸데없는 걱정. 응앗? 이츠키의 단호한 음성에 카게히라는 눈을 깜빡였다. 갈 곳은 있나? 그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기다리는 자는? 내를? 그런 사람은 없데이. 슈는 잠시 망설이다 말을 꺼냈다. 그럼 이곳에서 머물도록. 응앗? 그게 무슨 말인가? 내 이해가 안 된다. 이제 이곳이 너가 지낼 곳이라는 말이다. 나와 함께 산다는 거야. 이래도 이해가 안 되나? 이츠키는 한 걸음 물러나 그의 이름을 불렀다.
"카게히라, 넌 나와 함께 살 것이다. 원치 않다면 지금 당장 나가도 좋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이츠키가 팔짱을 낀 채 자신만만해 보이는 웃음을 지었다. 카게히라는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는 얼굴로 이츠키를 쳐다보았다.
"그... 저기, 내 이름은 어찌 알았데이... 아니, 그럼 내 여기서 머물러도 된다는 말... 내 잘 이해한게 맞나? 그럼 내는 여기서 무얼 하면 되나? 내 아무거나 잘하는디, 심부름도 요리도 청소도 못하는 게 없다! 아무거나 시켜주면 내 열심히 하겠데이. 내 몸 바쳐 일하겠데이!
이츠키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대답한다. 카게히라, 너가 할 것은 아무것도 없어. 이곳에선 말이야. 응앗? 그럼 그냥 있으란 말인가? 안된다...! 카게히라가 이츠키의 말에 토를 달려 일어서자 이츠키는 이마를 짚으며 말을 끊어낸다. 말이 많군. 난 피곤하니 올라갈 게야. 더 이상 할 말은 없는거지? 그의 말대로 피곤해보이는 얼굴에 카게히라는 마지막 질문을 한다.
"그럼 내는 당신을 뭐라 부르면 되나? 도련님? 주인님?"
"농! 무슨 말을 하는 것이야! 이츠키, 이츠키라 불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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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너머로 빛이 들어오자 이츠키는 살며시 눈을 떴다. 카게히라. 입 밖으로 이름을 내뱉자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한숨을 내셨다. 하아, 내가 미친 게야. 정녕 미친 게 분명해. 이츠키는 몇 번을 중얼거리고 몸을 일으켰다. 의자에 걸쳐진 가운을 입으며 문 밖을 나서자 녹색 머리칼이 위 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
"카게히라? 거기서 무엇을 하는거냐?"
창 앞에 무릎을 꿇고 있던 카게히라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응앗? 이츠키, 당신 일어난 기가? 어때, 꽤나 깨끗해지지 않았나? 내 이런 거 잘한다, 시키만 주면 빤딱하게 닦고 먼지 한 톨 없게 하깄다."
카게히라가 씨익 웃어보이자 이츠키는 어이가 없어 한참을 있다 말을 내뱉었다. 아니,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니 그게 아니지. 카게히라, 왜 벌써 있어났는 게야? 잠자리가 불편했어? 아니면 추웠느냐? 이츠키가 성큼 걸어와 묻자 카게히라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오히려 너무 푹신해서 낯설었구먼. 내 살아 생전에 제일 좋은 자리였다!"
이츠키는 잔뜩 신나보이는 카게히라의 뺨에 묻은 먼지를 문질렀다.
"하아, 이런 거 할 필요 없대도. 먼지나 닦고 말해라, 카게히라. "
카게히라는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뒷걸음 쳤다.
“어제부터 생각했지만 이츠키, 당신은 참말로 예고없이 들어오는 구만. 이것봐라, 들리나? 내 심장이 너무 두근거려 무섭데이. 이러다 당신한테까지 들리는 기 아닌가 모르깄다. 들리면 약간 창피할 거 같은디, 들려도 모른 척 해줄기지?”
카게히라는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귓가가 붉게 물들고 뺨도, 손끝도 붉게 물들자 이츠키는 그런 그의 행동을 보고 순간 열기가 솟쳤다. 온 몸이 화끈거리는 것 같은 기분에 이츠키는 황급히 그를 두고 걸음을 옳겼다. 눈 앞에서 갑자기 사라진 이츠키를 따라 카게히라는 소리쳤다.
"내 아침밥 했는데 먹을기가?! 내 맛있게 했데이, 믿어도 된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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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진 괘종시계가 울리기 시작하였다. 동시에 이츠키가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카게히라도 이츠키를 찾으러 방 곳곳을 찾아봤으나 아무 곳에도 그는 없었다. 1시간이 지나고 2시간이 지나고 그를 보지 못해 잠에 들지 못하여 뜬 눈을 밤을 샜으나 여전히 그는 없었다. 그리고 그를 기다리다 잠깐 잠들어버리면 어느새 자신의 곁에서 중얼거리는 그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들려. 네게 끔찍한 소리가 들린단 말이다.”
그 말을 하는 그의 얼굴이 너무나 슬퍼보여 물을 수 없었다. 카게히라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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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게히라는 문뜩 들었던 기시감을 여전히 그에게 말하지 못하였다. 한밤 중에 울리는 괘종시계도, 부서진 조각상들도, 누군가의 비명소리, 삐그덕거리는 계단의 소음과 무너져가는 창의 울음도, 그의 슬픈 연유도, 카게히라는 이츠키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으나 아무것도 묻지 못하였다.
카게히라는 문뜩 불안함이 솟구쳐 어찌 할 줄을 몰랐지만 이 역시 이츠키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꿈에 당신이 붉게 물들어간다고, 차갑게 식어 나를 보며 웃지 않는다고, 더 이상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왜 내게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느냐고, 이런 말조차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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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 카게히라... 카게히라! 지금 내가 몇 번을 불렀는지 알고 있는 게야? 제발 한 번 답하라는 말이다. 그리고 쇼파에선 잠들지 말래도 말을 안 듣는군. 카케히라...? 카게히라, 악몽이라도 꾼 것이야? 왜 이리 식은땀을 흘려. 괜찮은 게야?
"당신, 어디가는 긴가?"
공허한 눈동자가 이츠키를 비췄다. 어디를 보고 있는 건지, 이츠키를 보고 있는 건지 그 너머를 보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고요하게 일렁거리는 눈동자와 섬뜩하리만큼 번쩍거리는 눈동자, 그 둘을 동시에 보던 이츠키는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착각에 한숨을 내셨다.
"하아, 내가 어제 말하지 않았나. 잠깐 옛 친우를 보러 간다고."
"..."
"카게히라, 왜 그리 심각한 표정을 지어. 정말 악몽이라도 꾼 게야?
이츠키가 손을 뻗어 카게히라의 뺨을 문지른다. 손바닥 너머로 그의 열기가 전해졌다. 열이 나는구나. 감기라도 걸린건가. 그러니 방에 가서 자래도. 왜 말을 듣지 않는 거냐. 이츠키가 부드러운 어투로 카게히라를 달래자 카게히라는 차가운 그의 손에 뺨을 문질렀다.
"그럼 내랑 같이, 아, 아이다. 내가 가면... 가서는 안된다."
카게히라는 말을 하다가도 눈치를 보며 말끝을 흐렸다. 이츠키가 무슨 말이 하고 싶냐는 얼굴로 쳐다보지만 끝내 카게히라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시선을 피한 채 이츠키의 옷만 꽉 쥐어잡았다. 카게히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눈치를 보았다. 그러곤 고개를 떨구고 작은 목소리로 묻었다.
"당신 다시 돌아오는 거 맞제?"
다시 여기로 올기지? 내 안 버릴기지? 내 여기서 가만히 기다려도 되는기지? 영문도 모르는 말을 하자 이츠키는 카게히라 앞에 앉아 눈높이를 맞춘다. 당연한 말을 하는군. 내 다시 이곳에 돌아오는 것을 걱정하다니.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면 절대 문을 열어줘선 안돼. 문 가까이로 가지도 말고, 멀리 떨어져 그가 떠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알겠나, 카게히라?
카게히라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츠키는 미소를 지었다. 쇼파에 내려놨던 겉옷을 집어들고 문 앞에 선 이츠키가 입을 열었다. 카게히라, 빨리 갔다오마. 그가 문을 열자 잠시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문이 서서히 닫히자 사라졌다. 이츠키가 떠난 저택은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아무리 불을 켜봐도 어두웠으며 공기가 턱 없이 부족하여 숨이 막혀왔다. 카게히라는 저택이 자신을 집어 삼킬 것만 같았다. 손에 땀이 베어 들었다. 붉게 물들어버린 이츠키, 그를 안고 있는 자신, 웃음 소리가 스며든 바람이 커튼을 휘날리고, 고개를 돌리면 끝이 없는 낭떠러지가 보이는 방 안. 카게히라는 몸을 웅크렸다. 눈 앞에서 사라지지가 않았다. 붉게 물든 이츠키가 자꾸 떠올라 괴로웠다. 너무나 생생해서 꿈이 아닌 것만 같아서 지금이 꿈 속인 것 같아서 카게히라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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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그 소문 들었나? 저 안개 낀 숲 말이야, 그게, 사람을 잡아먹는다더군. 아니, 아니 왜 그런 눈으로 보는가? 이 나이 먹고 내가 장난치는 것 같나? 자네도 알면서, 전에도 이런 말 많지 않았는가. 저 안개 낀 숲 속에 사람 잡아먹는 악마가 산다고!
이보게, 그런 진부한 소문을 누가 믿나. 그리고 그 숲은 전부터 말이 많지 않았는가. 뭘 새삼스럽게 그러나. 냅두면 사라질 소문을.
이번엔 헛소문일 수가 없어. 내가 장담하네. 그, 그게 이거 어디가서 말하면 안되네. 당신한테만 알려주는 거야. 사실은 그 숲 안에 저택이 있다네. 자네, 기억나나? 썩 기분 나쁘게 생긴 놈 말이야. 한 눈을 시퍼렇고 한 눈은 번쩍거려서 다들 괴물이라고 부르던 그 놈, 그것이 그 숲에 들어간거야. 그래서 우리 마을 놈 한 명이 그것을 따라갔는데 따라가다 보니까 왠 저택이 나타나더래!
그 마을 놈은 살아 돌아왔나?
아니,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지 않는가!! 큼, 아니 그래서 그 괴물 놈이 홀린 듯이 그 저택으로 걸어가 문 앞에 서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고 안개가 자욱히 끼더니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하더군. 그리고 조금 있으니 안개 사이로 촛불이 잠깐 보이더니 안개도, 그 놈도 사라진 후였다네. 놀랍지 않는가? 숲 안에 저택이 있었다니, 그럼 그 곳에 누군가 살고 있다는 거 아닌가?
아, 그럼 악마가 아니라 사람이 사는 거군. 역시 헛소문이라니까.
그럴 리가 없네! 그러면 왜 아무도 그를 본 적이 없는가? 그리고 그 저택 주인인 마을에 내려온 적도 없는데 여태까지 무엇을 먹고 산 건가? 안개 낀 숲에서 먹을 게 무엇이 있다고. 자, 내 말을 들어보게. 이것은 분명히 그 자가 숲 속에서 사라진 사람을 먹은 게야! 더군다나 증거도 있지, 실제로 그 숲에서 사람이 사라진 적이 있으니까! 이건 틀림없네. 그 저택엔 악마가 살고 있어. 그래, 그래! 생각해보니까 과거에 그런 일도 있었잖나! 인간을 제물로 바치겠다고 저택과 함께 불태웠던!
그래, 있었지. 허나 그건 사고가 아니었는가. 죽은 사람은 그저 어린 아이들이었고, 어른의 얼토당토없는 추악한 욕망 때문에 일어난... 기억하고 싶지도 않네. 그만하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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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츠키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괘종시계는 울리기 시작했다. 카게히라는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온통 어둠뿐이었다. 살곁에 느껴지는 바람은 한 순간일 뿐 저택은 그의 숨통을 조여왔다. 점점 괘종시계의 울림이 멎어가는 것을 느꼈다.
숨죽여 들으면 무언가 바스라지는, 타들어가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누군가의 웃음 소리와 누군가의 비명 소리가 섞여 들려오기도 하였다. 무언가 따스한 기분이 들기도 하였고 누군가 자신을 안고 있는 것 같기도,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기도, 자신이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것 같기도 하였다.
카게히라는 점점 몸이 무거워졌다. 자신의 심장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다. 눈을 뜨려 하여도 뜰 수가 없었다. 멀어지는 소음과 더디게 맡아지는 향, 잔잔히 떠오르는 어린 목소리, 누군가를 원망하는 듯한, 익숙하고도 그리운 목소리가 멀어져갔다.
카게히라는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준다면, 그 자가 이츠키라면, 그가 내 이름을 부르며 날 찾아준다면, 어쩌면 이 소음들은 전부 이츠키가 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