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늘 갑작스레, 그리고 예상치 못한 어느 날 불쑥 찾아오는 사람이었다. 당신의 소식도 그러했다. 단조롭고 잔잔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가도 들려오는 당신의 소식 하나에 나의 하루가 뒤흔들릴 만큼 놀랐던 일도 적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당신은 하나하나 놀라는 내 반응이 즐거운 것인지 만족스러운 듯 웃어 보였고, 나 역시 그런 당신을 보며 함께 웃었던 기억이 난다.
당신의 갑작스러운 방문은 아마 우리가 멀어지면서부터 빈도가 늘어났던 거 같다. 예전 같았으면 금방이라도 손이 닿는 거리에 머물던 당신이 저 먼 나라로 떠난 뒤로는 빈자리가 어찌나 크게 느껴지던지, 우리가 주고 받는 연락 속에서도 그리움의 전부를 채우기는 늘 부족했다. 늘 예상치 못한 이야기와 근황을 전해주며 나누는 짧은 몇 시간의 통화는 당신과 멀리 떨어져있는 내가, 우리가 연결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늘 당신이 부족해 조금이라도 서운한 티를 내면 당신은 예고 없이 찾아와 나를 놀래 켜주곤 했다. 그것이 우리의 사랑이었다.
그럴 때마다 늘 당신의 갑작스러운 방문이나 예상치 못한 소식에 놀라지 않은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아마 여기서 더 놀랄 수도 없을 테니, 아니 더 놀라고 싶어도 이제는 그럴 기회 조차 없겠지. 그런 당신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인사가 고작 “잘 자.”라는 짧디 짧은 한마디였다는 것이 이리도 후회스러울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당신에게 다시 인사를 건넬 수 있는 기회도, 그 인사를 받아줄 당신도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었다.
***
“유명 아이돌 그룹 Valkyrie의 리더 이츠키 슈 씨의 사체가 오늘 오전, 추락한 항공편의 잔해 속에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이츠키 씨의 사체를 수습하기엔 주변 환경과 기상 상태로 인해 다소 무리가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세상은 슈의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모두의 관심과 사랑, 동경과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어느 젊은 예술가의 죽음이라니, 이 어찌 흥미롭지 않은 주제일 수 있겠는가. 모두가 사랑하던 유명한 아이돌이 하루 아침 만에 저 깊은 바닷속으로 추락해버렸다는 소식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는 충분한 타이틀이었다.
티비에 나오는 뉴스에서는 아나운서가 이번 사고의 대해 무어라 열심히 떠들어 대고 있었지만 미카의 귀에는 슈의 사체가 발견되었다는 말 이후로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걸까. 슈가 탑승한 비행기의 엔진에 새가 빨려 들어가버린 것? 그로 인해 비행기가 추락하고 만 것? 그것도 아니면 슈가 그 비행기에 탑승한 것부터였을까? 아니, 애초에 슈를 보고 싶다고 며칠 전부터 칭얼거린 저의 말부터, 그래. 처음부터 모든 것이 잘못되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자꾸만 보고 싶다며 수시로 말한 스스로가 이 모든 사단의 문제였을 거다. 스스로를 탓하며 머리를 쥐어뜯어본다.
처음 사고 소식을 접했을 때, 미카는 믿을 수 없었다. 분명 자신이 잘못 본 것이라고, 누군가가 잘못 알고 낸 오보일 것이라고. 그러니 슈는 아무 일도 없이 무사히 프랑스에서 저녁을 맞이하고 있고 이는 단지 다른 이와 슈를 착각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말이다. 이런 일이 사실일 리 없었으니까, 당연히 거짓이어야 하니까. 아니, 그래야만 했다. 거짓이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정신이 나갈 것만 같은 기분에 미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뭔, 뭐? 누꼬! 누가 이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기사로 낸 기가!”
“미카쨩, 일단 진정하고……!”
“이거 놔라, 나루쨩! 내 지금 당장 가야 한다!”
휴대폰을 바라보던 미카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있었다. 핏기가 가신 듯 하얗게 질려서는 당장이라도 교실을 뛰쳐나가려는 미카를 아라시가 겨우 붙잡아 달래보려 했으나 이는 소용 없는 짓이었다. 미카의 귀에는 지금 그 무엇도 들리지 않았으니, 오직 슈의 생사를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오늘 오전, 프랑스에서 일본으로 오는 항공편이 도중에 추락했다는 사실이, 그리고 거기 슈가 탑승했다는 소식이 함께 실린 기사는 미카가 새파랗게 질리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발버둥치는 미카를 향해 아라시는 큰 소리로 외쳤다.
“정신차려, 미카쨩! 우선 연락부터 하고 기다려야지! 지금 당장 뛰쳐나가도 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 일단 이렇게라도 기다려봐야 하지 않겠니?”
그 말이 맞았다. 제 아무리 급하다 한들 미카가 당장 뛰쳐나가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 하나 없었다. 저 먼 프랑스를 향해 일본에서부터 달려간다고 한들 진작 갈 수 있었으면 항공과 선박이라는 수단은 왜 존재했겠는가? 두려운 마음과 제발 무사하기를 간절히 빌며 미카는 떨리는 손으로 슈에게 연락을 넣었다. 잔뜩 긴장한 채 겨우 보낸 한마디, ‘스승님, 별일 없나?’. 이제 답장이 오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읽음이라는 표시가 뜰 때까지 묵묵히 기다리는 수 밖에.
하지만 이제는 의미 없다. 기사가 오보일 것이라며 외면했던 현실부터, 어쩌면 무사히 탈출해 살아있을 거라는 일말의 희망, 사체가 보이지 않으니 아직까지 죽은 것이 아니라는 마지막 기대와 제발 멀쩡했으면 하는 바램까지 전부, 여전히 뜨지 않는 읽음 표시와 함께 뉴스에서 나오는 저 소식을 끝으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끝내 슈의 완전한 죽음이 선고된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더 이상 뉴스를 보고 있는 것은 무리였다. 이 이상 슈의 죽음의 대해 듣는 것에 고역이 느껴져 미카는 무기력하게 팔을 들어올려 텔레비전의 전원을 끄고 힘없이 이불 속으로 더욱 더 파고들었다.
어질러진 주변에서 사람 하나 겨우 몸 뉠 수 있는 이 작은 침대가 지금 미카에게는 유일하게 숨 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 새가 세상에 나오기 전 몸을 작게 웅크려 알 속에 숨을 죽이고 잠든 거처럼, 자신의 주변을 슈와 관련된 물건으로 에워싸고 미카 역시 알 속에 숨어든 새가 되었다. 그런 미카의 몸을 감싸주는 이 얇은 이불 한 장과 주변을 둘러싼 것들이 지금 당장 미카의 세상의 전부를 품어 현실과 단절시켜주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 속에서 마치 자신을 보호하려는 듯 미카는 더 작게 몸을 웅크리고 눈을 감았다. 바삐 돌아가는 도시의 소음 속, 눈을 감으면 찾아오는 잠시의 어둠과 정적, 그리고 그에 맞지 않게 시끄럽게 비명을 질러대는 미카의 마음. 그 무엇 하나 맞는 것 없는 불협화음이다. 아름답게 조율된 악기가 망가진 거처럼 하나같이 엉망진창의 소리만 날 뿐이었다.
이제는 현실을 받아들일 때다. 슈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 다시는 함께 노래하고 춤을 출 수도, 잘 잤냐며 간밤 사이에 안부를 묻는 인사도, 그 무엇 하나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왜 그때 보고 싶다고 괜한 응석을 부렸을까 후회가 앞서기도 했다. 어쩌면 전날 밤 보고 싶다고 칭얼거린 자신 때문에, 슈가 괜히 비행기를 타서는 이 사단이 일어난 것은 아닐까…… 라고 스스로를 탓해보기도 한다. 그러한들 슈가 돌아오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자책하고 책망한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고, 바보 같은 짓이었다고.
스스로를 탓하고 원망하며 미워하는 것도 벌써 몇 밤째인지, 이제는 눈물을 흘릴 기운조차 사라져 몸을 움직일 힘도 없다. 너무 울어대면 사람은 쉽게 피로해진다고 하였나. 눈꺼풀이 무겁게 감겨 내려와 이불 속에서 잠에 빠져든다. 조금씩 천천히 물에 잠겨가듯, 그렇게 물 속에서 귀가 먹먹해지는 거처럼 주변에 소음은 멀어지고, 심해로 빠져드는 거처럼 잠에 빠진다. 물가에 밀려오는 파도처럼 꿈 역시 차오른다.
잠들어도 잠든 거 같지 않은 감각, 그리고 그 꿈 사이에서 희미하게나마 다시 보이는 당신의 모습임에도 어째서인지 얼굴만은 보이지 않는다. 죽은 당신이 나온 꿈은 그리움에서 비롯된 것일까, 제 아무리 그립다고 한들 죽은 이가 나온 이상 그 꿈은 악몽 아닐까……. 애초에 내 꿈에 나와준 당신을 감히 제가 악몽이라 부를 수 있을까? 아니, 나는 그리 말할 수 없다. 죽은 이가 나온 것이 아닌 그리운 이가 나온 것이라 믿기에, 지옥 같은 현실보다 달콤한 꿈에 취한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좋은 오후, 카게히라.”
“스승님……. 정말 스승님 맞나?”
비록 저의 질문에는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았지만 나긋나긋 부드럽게 저를 불러주는 것이 당신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미카는 닿지 않을 것을 머리로 알면서도 몸은 절로 슈를 향해 뻗으며 다가섰다. 꿈 속의 슈 얼굴 위로 드리운 그림자는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보여주지 않았지만 미카는 느낄 수 있었다. 슈는 웃고 있노라고, 슈 역시 자신을 그리워하고 기다리고 있다고. 이는 곧 그가 자신을 부르고 있음을 말이다.
“이제 슬슬 날이 추워지는 구나, 제법 쌀쌀하니 건강 정도는 잘 챙기려무나.”
그러는 당신이 있는 곳은 춥지 않나? 무서울 정도로 어둡고, 소름 끼칠 만큼 차가운 그 곳에서 홀로 있을 당신을 생각하니 내 마음은 너무도 무겁다. 이 말을 그대로 전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을, 할 말은 한가득이거늘 목까지 올라오다 목구멍에서 걸려 그 이상 넘어가지 못하고 다시 삼켜진다. 그렇게 튀어나올 수 없는 말을 머금은 채 미카의 입은 소리 없이 뻐끔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하고 싶은 말은 수도 없이 많은데, 아직 다 전하지 못한 것이 더 많은데 무엇이 그리 급하다고 당신은 벌써 떠나려 하는가.
그렇게 당신이 점점 멀어져만 간다. 따라가려 해도 미카의 몸은 아주 무거운 돌에 짓눌린 듯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뒤쫓아가지 못해 제자리에서 발을 떼는 것도 힘겨웠다. 힘겹게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당신의 이름을 외쳐보아도 여전히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기다려주지 않아 끝내는 놓치고 말았다.
“스승님……!”
그렇게 슈를 크게 부르며 꿈에서 깨어났다. 일어나 돌아본 제 모습은 식은 땀에 흠뻑 젖어 있다. 몸은 가위에라도 눌린 마냥 천근만근 무거웠고 머리는 지끈거리며 아파오는 것이, 자고 일어난 것임에도 피곤함이 가시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저의 모습을 보고도 악몽이 아니냐 누군가 묻는다면 미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이는 절대 악몽이 아니라 단언할 기세를 한 얼굴이었다.
방금 막 잠에서 깨어나 비몽사몽 한 상태가 채 가시기도 전에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벗어났다. 절대 나올 거 같지 않은 작디 작고 약하디 약한 세상을 미카 스스로 벗어나 현실로 뛰어나온 것이다.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는지 이불을 벗어 던지고 가벼운 겉옷을 걸친 채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 나설 준비를 끝마치고 현관을 열고 나가는 순간, 때마침 걸려온 전화. 화면에는 선명히 ‘나루쨩’이라고 적혀있었다. 잠깐의 고민 후 미카는 조심스레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미카쨩? 몸은 좀 괜찮아?”
저를 걱정해주는 다정하고 상냥한 친구의 목소리였다. 슈를 잃은 것은 미카에게 있어 세상이 무너진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주고 알아주는 아라시였기에 평소보다 더욱 걱정된 맘으로 그 또한 조심스레 연락을 한 것이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미카는 아무렇지 않은 척, 덤덤하게 통화를 이어갔다.
“내 인자 좀 괘안타. 슬슬 학교도 나가봐야 하고 계속 이렇게 집안에만 있을 수는 없잖나, 그제 나루쨩?”
“미카쨩……, 무리하는 건 아니지? 억지로 괜찮은 척 한다거나, 내 앞에서는 괜찮으니까…….”
상냥하고도 섬세한 나루쨩, 누구보다 날 잘 알아주는 나의 친구. 하지만 그에게 무한정 기댈 수만은 없는 미카였다. 기댄다고 이 무거운 감정이 해결되지 않을 것을 아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어두운 부분까지 아라시와 나눌 필요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라시 역시 미카의 그런 마음을 아는 것인지 억지로 괜찮은 척 하는 미카를 눈치
채고도 모르는 척,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넘어가주려는 듯 보였다.
“정말……? 그럼 미카쨩 우리 얼굴도 볼 겸 카페에서 잠깐 만날까?”
그럼에도 걱정이 앞서 역시 상태만큼은 확인하고 싶어하는 듯 했다. 방금 막 집을 나선 참이고 달리 어디 갈 곳이 있는 거 같지는 않아 보였지만, 그리고 아라시의 의중은 이미 알아챈 미카였으나 그 제안은 망설임 없이 거절했다. 친구와의 만남보다는 지금은 더 우선시 할 일이 있다는 표정으로 현관을 나선 후부터 막힘 없이 걸어나갔다.
“미안타, 내 지금은 조금 일이 있어가……, 다음에 만나믄 안 되까?”
“미카쨩이 그렇다면야……, 건강 잘 챙기고 다음에 보는 거다?”
“응응, 당연하제. 고맙데이 나루쨩. 내 그럼 이만 끊으께.”
웃으며 전화를 끊은 미카의 표정은 한껏 비장해졌다. 그래, 아직은 끝마치지 못한 할 일이 있다. 어릴 적 당신이 그러하였듯 자신 역시 당신을 따라 이불 속에 숨어들어 이 잔인한 현실을 외면하는 사이, 그렇게 홀로 지난 시간들을 돌아볼 수 있던 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들 속에서 드디어 해야 할 일을 찾아낸 것이다. 당신과 나를 위해, 우리가 다시 한 번 함께 만나기 위해서다.
그 누구도 저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철저히 얼굴을 가린 미카가 도착한 곳은 어느 한적한 바닷가. 꽤나 외진 곳에 있어 이곳을 찾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 보였고 지금은 미카 혼자 뿐, 주변은 고요했다. 주위의 모든 소리는 파도 소리에 잡아 먹힌 듯 정적뿐이었고 그 정적 사이 모래사장 위에 서면 프랑스를 향해 바라보듯 서있을 수 있었다.
그리운 당신을 향해, 조금 더 가까워질 수만 있다면 기꺼이 어디라도, 설령 그곳이 지옥 밑바닥이라 할지라도 나는 떨어질 수 있다. 그 곳이 심해 밑바닥이라 하더라도 바뀔 것은 없다. 당신을 위해서라면 내 전재산도 목숨도 기꺼이 바치겠노라 말했으니까, 곁에 함께 하기 위해서라면 이 생 역시 얼마든지 바치겠노라.
한 걸음 한 걸음 바다를 향해 내딛는 걸음에 망설임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세차게 저를 육지로 밀어내는 파도를 헤치고 조금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가슴까지 올라오는 물살. 숨을 쉬기에도 점점 버거워지는 이 감각이 오히려 당신과 가까워지고 있음을 증명해주는 것 같아 더 달갑게 느껴진다. 거의 다 와간다. 이제는 저 깊은 심해 속으로 숨 참고 당신을 보러 간다.
그 다짐을 끝으로 모래사장 위로 외로워 보이는 하나의 발자국이 바다를 향해 길게 이어져 있을 뿐이었다.